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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방송 BBS, 김봉래 보도국장과 캐서린한의 인터뷰 내용에서 발췌했습니다.
Q: 비폭력대화가 명상과도 상당한 연관 효과가 있다고 하던데, 실제로 어떤가요?
비폭력대화(NVC)에 명상이 중요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워크숍을 할 때 대개 간단한 명상으로 시작합니다. 몸과 마음이 지금 여기에 와서 오늘 다루는 주제에 마음이 열리도록 하는데 명상이 도움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집에서나 어디 가서 진지하게 명상을 하려 할 때, 우선 우리 안에 문제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화가 났다든가, 무언가 두렵다거나, 슬프거나, 어떤 쾌락에 집착해 있든가 등 우선 내 안에 문제들을 정돈하고 나서 앉는다는 것입니다. 내 안의 문제들을 NVC 프로세스로 다루면 효율적으로 정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명상이기는 하지만, 내 안에 질서를 들여놓고 나서 앉아서 명상을 합니다. 내면의 문제들을 먼저 정돈하지 않으면 명상이 일종의 도피가 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이 멈추고 시간이 멈추는 어떤 경지의 조용한 곳, 보통 생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신성한 것을 볼 수 있는 그 곳, 무한하고 헤아릴 수 없는, 끝없는, 멋진 그곳은 혼란스러운 마음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니까요.
제가 한번은 비폭력대화를 만드신 마셜 선생님에게 명상에 대해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NVC와 명상, 두 기둥이 같이 서야 서로 지원을 하면서 지붕이 잘 지어지지 않을까요?”마셜 선생님이 조용히 생각을 하시더니, “캐서린은 NVC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셨어요. 제가 나름대로 NVC가 무엇인지 대답을 하고 나니까, 마셜 선생님이 “나는 그것이 다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어요.


Q: 명상이 더해져 그런 효과가 생기는 어떤 분명한 원인이 있을까요?
뇌과학에서 우리가 주의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서 뇌의 활동이 달라지는 것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음챙김(mindfulness)에서도 마음(mind)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한데 NVC에서는 우리의 느낌과 Need에 주의를 두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 안에 신성한 면과 연결을 할 때 그런 효과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Q: 수행의 종교이기도 한 불교와도 상당한 연결이 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네. 불교의 가르침도 생활에 옮기기 위해서 수련을 해야 하는 것처럼 NVC도 처음 배울 때는 쉽지만, 오래된 말하는 습관이나 생각 패턴을 바꾸는 것이라 연습이 필요합니다. 옥인동에 있는 센터에서 또 여러 다른 곳에서 연습모임을 합니다. 희망은 뇌과학자들이 증명한 것처럼 우리 뇌는 가소성이 있어 노력을 하면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도 공감을 좋아합니다.
Q: 불교에서도 8정도 가운데 정어(正語)가 들어 있어요. 바른 말을 쓰는 게 그만큼 생활 속에서 중요한 요소인데요,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 그런 말이 있듯이.
네. 저희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갚는 그 천 냥이 지금 돈으로는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천지창조도 말로 시작되었다고 하는 했지요. 말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이 우리 생각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8정도 가운데 정어(正語)에서 ‘거짓말을 하지마라, 나쁜 말 하지마라, 이간질 하는 말을 하지마라, 속이는 말을 하지마라’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실하고 정확하고 좋고 선한 말, 연결과 조화를 가져오는 말, 정직한 말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잘못 알았으면 말씀해 주세요. 비폭력대화에서는 어떤 마음 자세로 어떻게 말을 하면 그렇게 진실하고 정확하고 착하고 연결과 조화를 이루는 말을 일상생활의 대화에 실을 수 있는지 그것을 알려드립니다.
Q: 향후 NVC의 가능성과 전망에 대해 한 말씀 주실까요?
네. 기독교인들이 NVC를 배우시면 “이것이 우리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이슬람을 믿는 분은 “이것이 우리 코란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불교인들도 “이것이 불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마셜이 시너고그에서 비폭력대화를 소개할 때도 이와 같은 말을 들으셨어요. NVC 모델은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는 인간 관계의 기본적 차원에서 하는 대화 방법이라서 그 가능성은 모든 사람이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는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조건을 넘어서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우리가 얼마나 같은 면이 더 많은지를 느낄 수 있게 되면,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연민과 친절한 행동이 가능하게 되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NVC에서는 중재 공부를 많이 합니다. 중재는 우선 내면에서, 개인들 사이에서, 그룹에서 갈등을 예방하고 이미 일어난 갈등을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배웁니다. 마셜 선생님은 전쟁터에도 뛰어 들어서 중재를 하셨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는 <비폭력대화> 책에서 자세히 보여줍니다. 비폭력대화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세계 모든 나라에 전쟁에 대비하는 국방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UN은 각 나라에 평화를 위한 평화부를 만들라고 추천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무기에 쓰는 돈의 10분의 1로 평화군을 훈련하면 세계평화가 가능할 거라는 것입니다.

공감
여러분과 소식을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지난달에 마당의 작은 텃밭에 상추, 토마토, 고추, 호박, 가지, 베이질, 오이, 로스메리를 심었고, 그리고 깻잎, 돼지감자도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흙을 파고 다지고, 덥고, 돌은 던지고.....심은 것 하나하나가 스스로 알아서 자라는 것이 예쁘고, 존경스럽고, 감사하고, 신비롭습니다. 그리고 이미 따 먹은 상추는 맛이 있는데 나비가 될 애벌레들도 좋아합니다.
근자에 ‘공감’에 대해 생각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동네 티셔츠 가게 광고에도 ‘공감’이 들어가 있고, 지난달 선거 동안에 ‘공감’이라는 말에 귀가 가끔 쫑긋해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공감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뇌 과학자에 따라 우리 뇌에 공감을 받으면 활성화되는 곳이 여섯에서 열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따뜻한 공감의 말 보다는 자칼 말을 듣고 자라면서 그 능력을 잃어버려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폭력대화를 만났을 때 그렇게 반갑습니다. 우리 뇌에 잠들어 있던 곳이 깨어나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빛을 보일 때 우리 안에 마술이 일어납니다. 제가 처음 깊은 공감을 받았을 때 제가 오래 믿고 있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내 안이 뒤집어 지는 것 같았습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믿어도 되나, 오래 갈까,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술은 계속 되었습니다. 철천지원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깊은 슬픔의 이유가 분명해지면서 위로가 되고, 상처가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 기술을 배워 자연스러워지면 어디든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 또한 마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이미 연결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공감은 pass 하고 문제 해결로 바로 가곤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냥 문제 해결로 가는 것이 쉽거든요, 공감의 다른 마술은 힐링의 힘입니다. 깊은 주의로 누군가 나를 들어 줄 때 우리가 몸과 마음에서 느끼는 에너지는 어는 약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공감은 느낌과 욕구에 중점을 두고 하지만 자기 말로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기술입니다. 그런 기술이 없으면 귀에 거슬리기도 하고, 거북합니다. 자연스럽게 자기 말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공감이 제 일상의 한 부분이 되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택시를 타면 거의 언제나 기사님들에게 공감을 합니다. 기회는 항상 있습니다. 다른 차가 급히 끼어들었을 때,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앞차가 꿈지럭거릴 때, 길을 비켜주지 안을 때 등. “저럴 때는 짜증나시겠어요.”, “답답하시죠.”, “놀라셨겠어요.”. 등 대개 느낌 한마디로 시작합니다. 거의 평생 감정을 눌러 감추고 느낌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사신 분들에게 적절한 순간의 느낌 한마디는 다른 세상을 열어줍니다. 반응은 거의 언제나 기대 이상입니다. 오래 가슴 깊이 숨겨 두었던 것 같은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제가 기사님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샬이 정신병원에서 일을 하다가 그곳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지가 않고 환자 리포트를 매일 거의 2시간씩 쓰는 것도 지겹고, 이미 인간중심상담연구를 시작한 때라 병원을 그만두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한동안 택시운전을 하셨거든요.
여러 가지 힘 power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보니, 공감이 많은 곳에서는 규칙이나 법규가 적고 규칙이나 통제가 많은 곳에서는 공감이 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부장적인 시스템에서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칭찬하고 끌어올려서 많은 결정을 하고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 시스템에서 일하면 어떤 느낌인지 아시지요. 공감은 그런 모든 힘을 넘는 super power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공감에 관해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한 10년쯤 전 일 것 같습니다. 이문동에 사시던 큰 무선 김금화 님을 뵈려 간 적이 있었습니다. 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을 만난 것은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댁에 도착해서 계신 방에 안내를 받아 문을 옆으로 밀고 방에 들어서니 방 건너편 쪽 보료 위에 있는 큰 탁자 뒤에 앉아 계셨습니다. 문을 닫고 인사를 드리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선님께서 쩡쩡 울리는 큰소리로, “아, 무당이 돼야 할 사람이 딴짓을 하니 문제가 생기는 거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인사도 못한 채로 서 있으면서 그 순간 나의 의식은 어떤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40분쯤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나는 것은 외국인이 굿을 청했을 때 제가 통역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독일 분들이 굿을 청하셔서 강화도에 있는 금화당에 친구와 함께 통역을 하러 갔지요. 보통 굿에 가면 보는 것에 주의가 다 가 있어서 많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통역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귀를 기울여 잘 들어야 했지요. 현란한 의상으로 김금화 님께서 춤을 추기도 하고 어떤 때는 노래로, 어떤 째는 야단을 치는 투로, 어떤 때는 얼리는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간에 제가 깜짝 놀란 순간이 있었습니다. 공감을 하시는구나!!! 꾸미는 것 하나도 없이 적나라한 우리말로 하시는 공감이었습니다. “그래... 가슴이 오그라들어서...”라는 말로 고달픈 마음을 위로해 주셨고 듣는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정신과나 상담이 생기기 전에 오래 동안 그 순수한 우리말 공감으로 우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신 것이 그분들이라는 것이 보였고 우리 안에는 그런 공감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안 깊은 곳에서 감사가 올라왔습니다.
“아, 무당이 돼야 할 사람이...” 이런 인사말을 들으신 분들이 또 간간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르지만 어딘가에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느긋해집니다.
캐서린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