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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보내며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일들이 일어난 한 해였습니다.
원하던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낯설어서, 또는 그것을 담아낼 딱 맞는 모델이 없어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기 어려우면 겁이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의 가장 심오한 욕구들 - 안전, 평화, 연결, 예측 가능성, 사람과 자연 돌보기 등 - 과 연결하면, 우리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더 지혜롭게 우리의 미래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의 미래를 선택해야 합니다.
대체로 4,000년 전까지 인류는 평화롭고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회를 이루어 살았고, 삶을 축하하기 위해 스톤헨지Stonehenge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그 후 인류는 주로 남성의 힘과 서열로 유지되는 사회, 노예노동으로 지어진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지배체제를 택했습니다. 지배체제에서는 소수의 지배자를 빼고는 남녀 모두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우리의 인간성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니드Need의식을 가진 기린, 아니면 서로 미워하며 경쟁하는 자칼.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는 우리가 계속 배우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고, 진정한 경제성장과 안전 그리고 의미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인간성을 온전히 펼치도록 지원하고 서로 돌보는, 생기 넘치는 공동체 안에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자원을 고갈시키는 소비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에 중점을 두던 데에서 눈을 돌려 어린이들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라도록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들이 튼튼하게 돌보는 데 초점을 두고, 자연환경을 돌보는 데 우리의 목적을 둔다면 성장, 안전, 의미는 저절로 따라올 것입니다. 미래는 우리 손에 있고, 우리는 성숙한 태도로 미래를 선택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우리를 구제해 주리라고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가 같이 살며 하는 행동에는 단체행동과 개인행동이 있습니다. 단체행동인 촛불시위로 우리는 큰일을 이루었습니다. 그 행동으로 구현하려던 가치는 평등, 진실, 신뢰 등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비록 단체행동으로 구조적 변화는 가져왔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이 사회에 저절로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그러한 가치들은 오지 않습니다. 평등한 사회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내 삶에서 다른 사람과 평등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요? 조금이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이전과는 다르게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까요?
모두의 Need를 동등하게 보는 비폭력대화(NVC)는 그런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혐오나 분노가 넘치는 상황에서, 의견이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NVC의 적(敵)이미지 프로세스(EIP)로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마치 기적을 보는 듯 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개인뿐 아니라 큰 공동체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제 각자의 촛불을 각자의 내면으로 비추어야 할 때입니다. 단체행동의 결실은 새로운 구조나 어떤 개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가치를 향해 변할 때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NVC라는 아주 좋은 도구가 우리에겐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공감 능력을 기르고, 중재 기술을 익히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힘을 기를 때, 우리 존재 자체가 우리 사회의 변화에 의미 있는 기여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격려하고 밀어 주시는 힘으로, 2018년에 우리는 많은 일을 함께 했습니다. 패밀리캠프에서 밝게 웃던 아이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2019년에 찾아올 새로운 도전을 앞둔 지금, 우리는 여러분과 손잡고 당당하고 재미있게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해 가고 있습니다.
보람 있고 건강하고 즐거운 연말연시 맞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 사랑을 실어
캐서린 드림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나요?
권 영 선
가사사건을 조정하기 위해 법원 조정실에 있노라면, 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 하나가 당사자들이 기대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제기한 소송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기대와 멀어지게 되는 것을 볼 때이다.
한 예로 남편과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혼 소송을 택하는 아내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 경우 아내가 원한 바대로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 때 아내가 바라는 것은 남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송에서는 결국 이기는 자와 지는 자를 가리게 되어 있으므로 당사자들은 이기기 위해 자신이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기억들(주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최선(?)을 다해 소장에 열거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 큰 상처를 주고받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은 내가 조정실에서 주로 당사자들이 상대방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들을 듣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소송은 길어 질수록 소송을 제기 하기 전보다 두 사람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떠 올리고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지극히 당연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음을 우리는 삶을 통해 알고 있다. 특히, 감정이 휘몰아치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려 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기보다 상대를 비난하고 벌주려 하는데 우리는 힘을 쓰게 된다.
3년 전 지금은 폐지된 간통죄가 적용되고 있을 때, 외도를 한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아내가 있었다. 그들은 변론기일(재판)을 2번 거치고 조정실에 왔는데 남편이 이혼에 동의한다는 말을 하자 아내가 말했다.
아내: “내가 이혼소송을 한 건 저 사람이 다시 돌아오길 바랬기 때문이예요. 나는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고 있어요. 저 사람이 원한다면 당장 소송을 취소할께요.”
결혼 4년차인 젊은 아내의 울음 섞인 절규였다.
남편: “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이게 지금 장난이야?!!”
아내는 이혼하려는 의사가 있어서 소송을 제기 했다기보다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겁을 주면 자신에게 싹싹 빌고 고개를 숙이며 들어올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다른 남편의 반응을 보자 당황한 아내가 한 말이었다. 조정 중 아내와 따로 얘기하는 과정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겁을 주면 돌아올 것이라는 주변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이혼소송을 한 것이었는데, 예상과 달리 남편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고 힘들어 했다.
또, 남편 역시 그런 아내가 밉다기 보다는 자신이 한 행동에 미안한 마음은 가지고 있으나, 다시 합치기에는 겪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우선, 그동안 자신을 다그쳤던 처갓집 식구들을 다시 볼 자신이 없고, 소송 과정에서 본가의 부모님들께도 너무 많은 상처를 입게 하여 부모님 뵐 면목이 없으며, 또 부모님이 아내를 다시 보는 것을 힘들어할 것 같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아내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송을 선택했으나, 결국 그들은 이혼을 하기로 합의하고 조정절차는 마무리되었다. 조정이 끝나고 소회(所懷)를 들어보니 남편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이제는 소송이 끝났다는 후련함을 아내는 지금은 너무 혼란스럽고 지난 일들이 후회가 된다고 말하였다.
아내는 무엇을 후회하고 있는 걸까? 그녀에게 물어볼 기회가 없어 묻지는 못했으나 조정 후 내 안에 남겨진 질문이었다.
외도한 남편을 용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일까? 아니며,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큰 만큼 더 벌을 주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남편과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송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그녀만이 알리라.
어쨌든 내가 들은 것은 그녀는 이혼을 원했던 것이 아니며, 남편과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이혼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통해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선택했던 방법을 아쉬워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참말로 아이러니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남편과 살고 싶어 이혼을 하자고 소송을 제기하다니... 혹자는 이해할 수 없다 하겠으나, 이런 경우들을 법원에서는 가끔씩 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삶이란 매 순간 각자가 선택한 점들이 이어져 하나의 선을 이룬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찍은 한 점은 과거 어느 날 찍은 점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동시에 미래에 찍을 점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어느 순간에 어떤 점을 찍느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 비로소 아쉬움 없는 한 점이 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점 하나를 찍고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멈춤의 순간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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