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칼럼

게시물 검색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작성일 조회수
  • 막연한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몸과 마음에 고통이나 괴로운 일을 경험한다.


    그럴 때 우리가 배운 방법은 대개 고통이나 불쾌한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고, 비생산적이며, 불편하고, 해롭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적으로 간주하고, 약물 등에 의존해 고통을 무디게 만들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가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고통을 대하는 행동양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억눌러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고통은 그 원인에 관심을 집중할 때까지 다양한 모양으로 계속 나타난다.


    몸과 마음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우리의 삶 자체에서 오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고통은 문제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이해해달라고 우리의 관심을 끌려는 구체적인 소통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고통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돕기 위해 찾아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결해 달라고 넘겨 버린다. 고통을 이해하고 변화시켜 우리의 삶에 융합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고통에서 오는 온전한 느낌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으면서, 약으로 무디게 만들지 않으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그 느낌은 우리에게 그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알려준다. 이 과정을 거쳐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치유하는 힘과 연결이 되고 내적인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쁨과 가벼움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고통으로만 보고 그것을 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여 피하던 상황을 아주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완전히 다른 태도로 대할 수 있는 자신감과 힘이 생긴다.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치유가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고통은 자기 자신만이 느끼는 것이고, 스스로 그것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데 있다. 아무도 자신의 느낌을 대신 느끼거나 실제로 체험해 줄 수는 없다.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자신의 느낌을 직시하고, 두려움의 원인을 찾아가 해결하며, 자기만의 보람 있는 삶을 찾도록 돕지 않는다. 그 대신 느낌을 피하는 방법들을 제공하고 조장해 막연한 두려움에 복종하도록 만들고, 소비나 중독을 부추긴다. 그래야만 더 많은 사람들을 ‘순종하는 착한 노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비폭력 대화(NVC)를 배운 후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은 바로 사회가 나에게 넣어준 ‘막연한 두려움 조장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해방감을 맛보길 바란다.



    여성신문 998호 [오피니언] (2008-09-19)
    캐서린 한 / 한국NVC센터 대표
    게시글 공유
  • 자녀 사랑은 들어주는 연습부터 

     

    복종 강요하면 자신감 떨어지고 의존성 높아져 
    존중과 이해의 마음으로 내면의 목소리 들어야

    --------------------------------------------------


    사랑은 이해하려는 관심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갓난아이는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 아주 제한적이다. 배가 고파도, 물에 젖어도, 추워도, 더워도, 놀고 싶어도, 잠이 와도 한 가지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자기의 생존을 부모의 사랑에 의존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똑같이 들리는 그 울음소리를, 부모는 사랑과 주의 깊은 관심으로 듣고, 그 순간순간 아이의 여러 가지 이야기와 부탁을 이해하며, 그에 따라 보살피는 행동을 해준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들을 표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자기표현이 서툴러서 어른들이 듣기 힘든 식으로, 예를 들면 주위 어른들이나 TV, 영화 등에서 보고들은 그대로, 또는 어른들의 개념이나 선입관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 이때도 유아기의 울음소리와 똑같이 주의 깊은 관심과 이해, 존중하는 마음으로 들어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버릇이 없다’ ‘대든다’면서 벌을 주거나 험한 말을 하기보다는, 그 울음소리 뒤에 간절히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안전과 신뢰 안에서 창조력을 잃지 않고 꽃필 수 있다. 그래야만 자기가 왜 하나의 의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는지, 그 신비스럽고 재미있는 이유와 자신만이 이 세상에 가지고 온 선물을 의식하면서 온전하고 유일한 인간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랄 수 있게 된다.

    조용히 복종하기만을 계속 강요당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기 내면의 진실을 신뢰하기 어렵게 되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남에게 의지하게 된다. 자기표현을 편하게 하고 싶고, 그때 누군가가 들어주고, 이해받고 수용 받고 싶은 이 중요한 욕구가 계속 거절당하고 좌절될 때 아이들 안에서는 조용한 분노가 쌓인다.

    물론 존중과 이해로 들어준다는 것과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기 내면의 소리에 대해 이해와 존중을 받으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자란다. 그렇게 들어줄 때 아이들은 자기표현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도 배우게 되고, 부모도 아이와 진정한 유대관계를 체험할 수 있어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행복에 대해 모두 각자 다른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은 부모들이 갖고 있는 행복에 대한 개념과 다를 수 있다. 아이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나의 행복에 대한 개념을 강요할 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의 삶에서 즐거움과 행복, 자유를 박탈하게 되고 아이의 삶은 고통스럽게 된다. 
    사랑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해 없는 사랑은 고통을 가져오고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해는 자신이나 상대를 비난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면서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991호 [오피니언] (2008-07-25) 


    © 1988-2008 여성신문세상읽기

     

     

    2011-12-09 

    게시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