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회복사업

밀톤의 공감

  • 2021-04-14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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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걸렸다. 내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럼 지난 10년 동안 난 여기서 뭘 했을까?  무얼 하느라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웠을까?  아이도 아닌 내가.

 

스위스,  낯선 이 곳에 온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그 사람이 이곳에 있고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결혼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갖게 됐고 생각보다 일찍 우린 부모가 됐다.  그때부터 우린 잦은 의견 충돌을 겪었고 나는 몸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부모, 그리고 엄마의 역할은 쉽지 않았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언어의 장벽으로 주변엔 마음 편하게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나의 두려움은 점점 더해 갔고,  속시원히 대답해 줄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비폭력대화를 공부 중인 남편은 무던히 나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자신이 배우고 연습한 것들을 나를 위해 깊은 연민으로 이해해 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거부했다.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남편이 나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뒤틀린 생각뿐  내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꾸준하게 나의 얘기를 들어주려 노력했고,  내가 스위스에서 열린IIT(국제심화교육)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한국에 갔을 땐 캐서린 선생님으로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조언해 주기도 했다.

 

본업과 병행하면서 비폭력대화를 꾸준히 공부한 남편은 나와 딸에게 끊임없는 공감을 해준다. 때론 남편도 공감이 필요할텐데 우리를 먼저 배려해준다. 그렇게 공감만 받고 살아오던 내가 ‘도저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더 이상 두려움으로 내 안에 꽁꽁 숨어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작년에 남편에게 있었던 두 번의 사고 때문이었다.  코로나와 사고로 그야말로 ‘자유’를 잃어버린 남편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짜증과 화도 자주 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던 남편에게 그동안 내가 받았던 공감을 되돌려주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들어만 주면 된다고 했지만 남편의 얘기를 듣다가 금세 감정이입이 되버려 공감실패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 코로나가 준 순기능( ?), 평소에 알고 지내던 강현주 선생님에게 연락을 해서 영상을 통한 공감모임이 있다는 걸  알고 작년 11월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당연히 어색하고 힘들었다.  고스란히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감의 기본은 쉽지 않았지만 나의 언어로 편안하고 안전하게 그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몸은 이완되었고 내 마음도 열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후 명상과 상담도 병행하면서 내 마음에 있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게 필요한 욕구를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뭔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뭔지,  이러한 것들이 조금씩 분명해졌고 나는 천천히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집중과 몰입이 되자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지고 앞으로 나갈 방향이 보였고,  그 시작이 뉴스통신원의 스위스 특파원이 되어 여기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관광으로 와서 보고 가는 스위스가 아닌 그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진짜 스위스를 알려주고 싶었다.

 

밖으로 향해 있던 나의 시선을 안으로 돌려놓고 나를 관찰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알아 차리고, 그 아래 어떤 욕구가 있는지,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는 부탁했다,  ‘도와 주세요.’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10년이 걸렸고, 이 기간 동안 남편이 포기하지 않고 나를 끌어당긴 공감이 없었다면 오늘도 난 우울한 감정에 빠져 한 때 좋았던 과거에만 집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쌓인 셀 수 없이 많은 공감, 밀톤의 공감이 나를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했다. 남편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밀톤의 밀(mille)은 불어로 숫자 천(단위)을 의미함.

 

글_신정숙 

 

 

 

 

 

신정숙 통신원의 기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421&aid=0005242190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421&aid=0005192071



출처: https://giraffeground.tistory.com/1029 [기린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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