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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아빠 입 열리던 날

  • 2015-08-24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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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던 날, 돼지아빠는 직사각형으로 배치된 좌석에서 우리와 가장 멀리 있는 자리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거무튀튀한 피부에 육십은 족히 되어 보였는데 캐서린 선생님의 오프닝멘트에서부터 내가 집단상담의 규칙을 이야기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진행할 프로그램 안내를 하기까지 그의 눈동자는 미동도 하지 않은 체 아주 가끔씩 눈꺼풀만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우리가 흔히 하는 표현으로 ‘저러다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지난 4월 16일부터 6월 4일까지 매주 1회 가정법률상담소 중구지부에서 캐서린 선생님과 함께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법무부로부터 교육 처분을 받은 남성 10명,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함께할 의지를 가진 2명의 부인과 NVC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에서는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로 했고, 그 때 만난 분들은 바다, 보, 산책, 돼지아빠, 김밥, DSY, 들국화, 세봉, 만두, 특사인, 미소, 미르... 각자의 다양한 삶을 대변할 수 있을만한 별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체크인할 때 참여했던 남성 7명 중,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2명이었고,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람으로는 5명이 손을 들었다. 그 때, 슬픔과 동시에 기대에 부풀고 있는 나를 보았다. 편안하고 명료해졌다.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아니 어쩌면 삶에서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별로 갖지 못했을 그들의 가슴속에 정리되지 않은 많은 경험들이 스스로를 답답하고 화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주어진 시간동안 그들에게 기여할 수 있음은 나에겐 보람으로 이어질 것이라 여겨졌다.

 
 
 
 

돼지아빠는 자기소개 시간에도 이름표를 들어 올림으로써 자신을 알렸을 뿐 진행하는 내내 철저히 ‘PASS' 옵션을 사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의 얼굴 근육이, 저 정도면 아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던 그의 눈이 점차 부드러워지고 있음을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비록, 그는 3시간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끝날 무렵 부드러워 보이는 그의 표정은 나를 긴장에서 벗어나 안심시키는데 충분했다.  

 

두 번째 날에도 그는 여전히 ‘PASS’를 선호했다. 그러다가... 체크아웃 때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배울 수 있는!!!”이라고... 공개적으로 듣는 그의 첫 목소리였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는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그는 때론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인해 프로그램 참여에 간혹 별도의 도움이 필요하긴 했지만, 자신의 별명은 큰아들을 생각해서 지었으며, 첫 아들이 태어난 날 자신은 세상을 다 얻은 것인 양 얼마나 기쁜 날이었는지 등등... 가끔이긴 했지만, 이야기보따리를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 날, 그 날은 캐서린 선생님께서 중국에 가셔서 못 오신 날이었는데, 그가 그렇게 하고 싶고, 할 말이 많은 남자였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거래처 사람이 처음에 했던 말과 다른 말을 했을 때 자기는 화가 많이 난다는 둥... 아직 관찰, 느낌, 욕구, 평가, 생각을 온통 뒤섞긴 했지만, 그 때 그에겐 그것들을 구별하는 것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 참을 기억이 나는 대로 혹은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하고 나더니, 그는 거래처 사람으로부터 ‘그게 아니예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은 화가 나고 억울하고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신뢰와 예측가능한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느릿느릿 더듬더듬 거리긴 했지만, 마침내 그는 자신의 내면을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기쁨에 넘친 축하를 그에게 하고 있었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강의 시작 전 돼지아빠와 내가 휴게실에서 함께 김밥을 먹고 있는데, 캐서린 선생님께서 오셨다. 그런데, 이 남자 캐샘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특유의 경상도 억양이 섞인 큰 소리로 “아이구~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하지 않는가???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나의 눈을 의식함과 동시에 그 순간 돼지아빠 안에 있는 한 아저씨를, 며느리와 손자가 있고 평범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엔 더 이상 레이저로 착각을 일으킬 만큼 강렬한 것은 없었다. 그저 그 연배에 말하기 좋아하는 초로의 한 남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돼지아빠, 말씀 잘 하시네요~ 잘 몰랐어요... ㅎㅎ” 그러자, 그가 답하길 “아이고~ 선생님요~ 내사 원래 말 억수로 많심더~~ 식구들도 그랍디더~~” 하지 않는가? 또 다시 돼지아빠 입에서 말이 봇물 터지 듯 쏟아져 나온다. 아~ 이제는 저 나오는 말들을 못 말릴 것 같다!!!

 

 

자신이 했던 많은 말들이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말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비난하는 말 일색이었음을 그가 알아차렸기를... 앞으로 그와 가족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지 않기를... 그리고, 이번 우리의 인연이 그가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NVC를 익혀 나갈 마음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에게 있다.

 

마지막 날 돼지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선생님, 이곳에 와서 교육을 받는 것이 어쩌면 내 인생에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모든 것을 그저 내 삶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네요...” 지금 이 순간 또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 가슴이 뭉클해진다.

 

 

돼지아빠를 생각하면 8회기가 너무도 짧았던 듯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그 날부터가 시작이었는데 말이다.

 

권영선 (한국NVC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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