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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칼럼

[대담] “작은 공동체 하나하나가 살아나야죠” _캐서린한 홍순명 대담 3

  • 한국NVC센터
  • 2014-08-21 0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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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동체 하나하나가 살아나야죠”
특별대담<3>'평화와 자연을 이야기하다' 캐서린 한 씽어 ·홍순명 대담



사회자 : ‘어떻게 하면 동등하게 평화를 구축할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이 될 때가 있습니다.

캐서린 : 한 명의 황야의 선지자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공동의 지혜를 어떻게 모아서 갈 것인가가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틱낫한 스님이 다음에 붓다가 오면 개인이 아니라 그룹으로 올 거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니까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룹의 지혜를 모을 수 있는 것이요.

홍순명 :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선의의 독재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모두의 의견을 모으는 데에서 지혜가 나오는 것이 민주주의의 장점이 아닐까요? 붓다가 그룹으로 올 거라는 말씀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는 어렵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개인을 존중하면서 남의 말과 말한 동기에 귀 기울여 이해하고 서로가 모두의 유익을 위해 보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개인주의나 권위주의가 아니라, 서로가 남의 이야기를 받아주고 대립구도 없이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어려움을 풀어나가는 공동체 문화 시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캐서린 : 그런데 우리가 오랜 시간동안 강요하고 복종하는 것만이 미덕이었던 시대가 있었어요. 겉으로는 민주주의 모양새를 만들어도 민주주의 식으로 독재자를 또 뽑아요. 개인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며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군주정치 아래 살며 복종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에 의해 나폴레옹이 다시 나오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 함석헌 선생님이 말하는 그 민초가 바뀌지 않으면 안돼요.

홍순명 :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되지 않으면 공동체도 성립하지 않지요. 대중에 매몰되지 않고 고립하지도 않으면서 더불어 살 수 있을 때 주체성이 있는 개인이 됩니다. 거기엔 아무래도 바탕에 가치관과 일관된 태도 등 한 선생이 말씀하는 어떤 ‘정신성’이 있어야겠지요. 정치를 크게 바꾸는 것보다 작은 공동체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게 중요해요. 그것이 저력이 되지 않으면 결국 정치가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악용해 여론 조작을 하면서 가면을 쓰는 권력이 됩니다.

캐서린 : 그리고 사실 우리가 지도자를 뽑는 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도 돈에 대한 철학이 안 서 있으니 무조건 “돈 벌게 해줄게”하면 찍었거든요. 우리를 반영하는 겁니다. 세월호 같은 대형 참사가 있으면 사람들은 행동을 하죠. 집단행동이 있고 개인행동이 있는데,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해요. 촛불을 켜고, 집회에 나가기도 하고, 서명도 하고요. 그런 집단행동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해놓고 개인 행동을 안 해요. 집단행동의 위험이 뭔가 하면, 사람들이 집회에 나가 구호 한 번 외치고 ‘할 거 다했다’고 해요. 그리고 실제 자기 개인생활에서는 이전에 살아오던 방식을 바꾸지 않아요. 이게 위험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개인행동이 따르지 않는 집단행동은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홍순명 : 정말 그렇습니다. 개인 생활과 자기주장이 일치해야 해요. 지도자들이 검증을 받아보면 자기주장과 실제 생활이 전혀 다르다는 게 다 나타나거든요. 우리 사회의 비극입니다. 또 비판은 하면서 자기는 예외로 생각합니다. 이건 종교와 교육이 자기 역할을 못한 것 같고요. 나도 학교에 있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여하간 위아래에서 자기주장과 개인생활이 일치돼야 민주주의가 뿌리내린다고 봅니다.

캐서린 : 그래서 제가 이런데 오면 정말 여러분들한테 머리가 숙여져요. 선생님들은 개인 삶에서 구현을 하고 있잖아요. 이런 공동체의 규모가 어디까지가 아이디얼(ideal·이상적인)하고,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지속가능한)하고, 매니져블(manageable·관리할 수 있는)하다고 보세요?

홍순명 : 글쎄요. 예수님도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셨어요. 풀무학교도 작은 학교를 고집해오고 있어요. 여기는 지역 인구가 3700명 정도 됩니다. 그 정도가 먹을 것, 에너지, 금융, 복지, 교육 문화등 자립하는데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옆의 면에서 이런 자립 움직임이 있거든요. 그러면 하나로 통합하지 말고 나뉘어서 자기 역할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커지면 나눈다, 특성과 다양성을 살리면서 협력한다, 농업도 규모화하지 말고 소농들이 협력한다, 간디의 마을 공업 카디나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도 너무 커가다가 잘못된 것 같아요. 요즘은 뭐든지 크고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캐서린 : 그런데 사회의 가치관은 더 큰 걸 원합니다. 그게 허상인데 그것을 어떻게 깰 것인가가 문제에요. 인도의 오로빌(Auruville·편집자 주 : 세계적인 요가 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오로빈도 고시가 만든 국제적인 영적 공동체 마을)을 아시나요? 제가 지난 1월에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현재 2000여명이 살고 있어요. 그곳 사람들은 항상 고민하더라고요. 더 크게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에 대해서요. 그곳은 30년이 됐는데, 집 한 채 짓는 문제를 두고 지을지 말지를 10년 동안 의논하고 있어요.

홍순명 : 그렇군요. 과감하게 쪼개고, 쪼개면서 다양성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지역에 공립학교도 있고, 어린이집, 풀무학교나 전공부 같은 법인체, 사립학교, 대안학교도 있어요.
또 홈 스쿨링같은 제3의 학교도 태동하고 있고요. 협동조합도 생협, 농협, 기업형 협동조합이 있고, 학교 생협 소비자 중심의 협동조합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여러 형태가 있다는 것은 서로 장점을 살리면서 보완해나가는데 역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미국 오하이오주의 아미쉬 공동체에 가보았는데 그 곳의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3만8000명쯤 됩니다.
아이를 여럿 낳는 걸 좋게 생각해서 20년마다 인구가 배로 늘어요. 그렇게 인구가 늘어도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스무 가정 정도의 작은 단위로 나누어 예배나 교육을 따로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서적 가치, 비폭력, 노동 등 몇 가지 기본 원칙과 전통이 확고하여 조화롭게 서로 존중하며 돕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 공동체와 땅과 영성이 바탕이 되어 서로 돌보며 돕는 사회를 현실화하는 것을 목격한 것은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캐서린 :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은 참 지혜로웠던 것 같아요. 그런 걸 다 했거든요. ‘계’라는 모임이 그런 거였는데, 지금은 순전히 오용되고 있죠. ‘계’라는 모임이 원래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뜻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요?
홍순명: 오랫동안 양반사회 속에서 농민들이 자구책도 되고, 농업노동은 공동으로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으니까요. 두레, 품앗이, 계, 향약, 이런 것들은 우리가 현대의 합리성을 더해 살려야할 소중한 전통입니다. 말씀하신 현대의 ‘계’는 협동조합으로 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사례는 잘 참고하여 보편성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들의 문화, 역사, 개성의 토대 위에서 현대생활에 결합해야 합니다. 보편성만 있어도 우리 전통만 강조해도 한쪽에 기울 것 같습니다.<끝>




대담1  “도시학생들 농촌에서 자연을 체험하고 배웠으면”

대담2    “공동체·흙·정신 가치 살려야”

대담 3  “작은 공동체 하나하나가 살아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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